無用 [moo;yong]

22. 2. 12. – 3. 25.

Taesoo Lee | Weedong Yoon

Era and generation of “futility”

How is art useful? Flowers and pebbles of beauty present no use in our lives. Yet, can it embrace any meaning to it? Art has never been essential to survival, but we have always entertained art in some form, such as painting or dancing. Unless one makes living through art, art may not be an essential part of life, but it has always been part of our life.

​Falling autumn leaves, fading tides, silly jokes, refreshing nap, and stupidly sitting pebbles. They may seem vain, but still contain epiphanies of eternity. We crave for joy. Flooded by daily life, our worned-out mind seeks for comfort in colors of autumn leaves and sounds of waves in seashells. In the end, what heals us is the useless ones. That, we believe, is the very essence of art.

​Art, indeed, belongs to the people, not just educated or professional. All arts may be vain. but it presents its own meaning to our life.

Thereby, Theo is proud to present two artists, who touch our soul through rock.

​Taesoo Lee, uses everyday objects such as glass, rock, or rebar. Giant concrete frame supported by thin glass. Seemingly going against the law of physics, his art portraits his mind by creating suspense and unidentified threat. Taesoo Lee questions and challenges current materialistic molding technique. The cognitive dissonance of his art awakes us to keenly observe the world.

From portraits to landscapes, Weedong Yoon, uses mirror, glass, and rock to expand his mind beyond canvas. His work embraces and acknowledges the Circle of life, including ours. The “Circulation,” represented by rock and sand, is infinite and cosmic, as we all awe. Through “The life of rock”, Yoon captures our very own circle of life.

​Rocks of two artists. What is in its own “futility” is our very mind and epiphany. Upon contemplating the very essence of Lee’s rock, we appreciate the value of “futility” to salvage ourselves. And, that leads back to the “Circulation,” where we can find our own path.

Theo presents the beautiful minds of Lee and Yoon about “Uselessness” and the very beauty of it.

무용한 것들에 눈길을 주는 시대와 세대에 대하여  『無用 (무용)』

우리는 무용(無用)한 예술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생존의 문제만을 놓고 본다면 산에 핀 꽃과 돌은 무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용하다고 느끼는 것에 과연 의미조차 없는 것일까? 생존 앞에서 예술은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은 그림과 춤 같은 다양한 행위를 통해 예술을 즐겨왔다. 화가나 안무가와 같은 예술을 업으로 삼는 이가 아니라면 예술 행위는 생계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지만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을 끊임없이 행해왔다.

바스러질 낙엽, 사라지는 파도, 덧없는 농담, 달콤한 낮잠, 그리고 이곳에 놓인 돌. 유용하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것에는 유희가 깃들어있다. 우리는 즐거움을 갈망한다. 바쁜 일상에서 피곤으로 찌든 몸을 이끌고 기꺼이 단풍을 보고자 몸을 움직인다. 바다를 보기 위해서 먼 길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고단함을 치유하는 회복이라 믿는다. 실용주의로부터 바짝 마른 마음을 매만지는 것은 결국 무용한 것들이다. 바로 그 무용함이 예술의 생명력이다. 

예술은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예술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며, 예술을 업으로 삼는 이들의 예술 행위만이 유의미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양한 예술과 예술 행위는 역시 무용하지만, ‘무용’에서 찾을 수 있는 의미 있는 가치에 대해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를 해 나아가야 한다.

여기, 돌을 통해 회복과 재생을 노래하는 자들이 있다.

이태수는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유리나 돌, 철근 같은 것들을 주된 소재 삼아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종종 육중한 건축 골조나 거대한 바위를 연약한 유리가 받치고 있는 등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장면들이 연출된다. 경량 소재로 제작되어 연출된 긴장감과 의문의 불편함에서 작가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이태수 작가는 고전적 조형 방식인 즉물적 물성이 여전히 주를 이루는 조형 어법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에 도전한다. 이는 또한 현실에 대한 우리의 지각이 안일함을 넘어서도록 북돋는 역할을 한다. 의식과 지각의 불일치가 주는 불편함은 우리에게 한 번 더 관찰하고 새로운 사유를 유발한다.

윤위동은 인물을 시작으로 자연물에 이르는 소재를 통해서 작업 속의 개인 영역을 넓히고, 회화에 유리, 거울, 돌을 배치하여 그 양식의 외연 확장을 시도해왔다. 그의 작업은 섭리와 이치를 담는 과정이며 동시에 자연물에 담긴 숙명을 보는 것이다. 그 속에는 인간의 삶 역시 포함된다. 모래와 돌로 표현되는 ‘순환’은 무한하고 우주적인 것으로서 우리의 경외를 자아낸다. 돌의 순환과정을 통해 작가는 인간의 윤회를 포착하는데 이것이 ‘암석윤회’이며, 바로 작가의 작품세계이다.

이태수와 윤위동의 돌, ‘무용’의 것들로 채워낸 무용의 장 場에는 사유와 유희가 있다. 자신을 스스로 구원하게 하고, 무지를 깨어버리는 이태수의 돌을 통해 본질을 사유할 때 우리는 무용한 것의 가치를 향유하게 된다. 그러한 사유가 순환하여  다시 출발점으로, 즉, 자신(自身)으로 윤회하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윤위동이 제시하는 ‘암석윤회’의 길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THEO는 이태수, 윤위동 작가의 『無用(무용) 展』을 통하여 실용주의 너머 “돌”이 전하는 ‘무용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에 대하여 사유할 수 있는 장 場을 마련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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